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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사망신고'하던 날 56만원 두고간 80대…3년째 남몰래 기부
영일군
2019.11.2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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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머리에 주름진 얼굴을 한 노인이 영문도 모른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며칠간 면도를 안 했는지 수염이 덥수룩하지만, 눈빛은 형형하다.

전북 진안군에서 올해로 3년째 남몰래 기부를 해 온 신숙진(81)씨다. 사진 속 신씨는 영락없는 시골 노인 모습이다. 진안 토박이인 그는 논농사를 지으며 정천면에서 혼자 산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이 사진은 2017년 1월 신씨가 정천면사무소를 찾아 처음 기부한 날 성금을 받은 최연화(42) 주무관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몰래 찍은 것이다. 평범한 80대 촌로가 해마다 기부를 하는 까닭은 뭘까.

18일 진안군에 따르면 신씨는 2017년 1월 정천면사무소에 현금 56만원이 든 봉투를 두고 갔다. 암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고(故) 김복순(사망 당시 76세)씨의 사망신고를 하면서 최 주무관에게 말없이 돈 봉투를 건넸다.

최 주무관이 "무슨 돈이냐"고 묻자 신씨는 "아내의 뜻"이라는 짧은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기부'는 신씨 아내의 유언이었다. 신씨 아내가 숨지기 전 남편에게 "내가 죽으면 가진 것의 일부라도 꼭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장례를 마친 뒤 신씨가 푼푼이 모은 돈을 가슴에 품고 면사무소를 찾은 건 아내와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 사연은 최 주무관이 당시 돈 봉투만 책상 위에 놓고 조용히 자리를 뜨려는 신씨를 붙잡고 조심스레 물어보며 확인한 내용이다. 신씨는 처음 기부할 때도 "돈을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면사무소 측은 신씨가 준 첫 성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아내 고 김복순씨 이름으로 기부했다.

이후에도 신씨의 선행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모두 256만원을 기부했다. 아내가 숨진 2017년 1월 56만원을 시작으로 그해 연말 60만원, 지난해 12월 70만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냈다. 올해는 예년보다 이른 지난 14일 면사무소를 방문해 70만원을 두고 갔다. 신씨가 기부한 성금은 정천면에 사는 저소득층 아동·청소년을 위한 장학금과 교복 구입비 등으로 쓰인다고 면사무소 측은 설명했다.

최 주무관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당시 아버님(신씨)이 아내 사망 신고를 하면서 돈 봉투를 내밀어 깜짝 놀랐다"며 "그래서 면사무소에서 가진 (신씨) 사진이 3년 전 제가 몰래 찍은 이 사진 한 장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님은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절대 원치 않았는데 제 입장에선 미담이어서 알리게 됐다. 이 사실을 알면 아버님께 혼난다"고 했다.

올해 신씨에게 직접 기부금을 받은 이명진(58) 정천면장은 신씨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면장은 "어르신은 평범한 시골 양반이다. 돈이 많아 기부하는 게 아니어서 더욱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어르신은 성금을 줄 때만 면사무소에 들른다. 말수도 별로 없으시고 조용히 사신다. 연락처도 (언론에) 절대 알려주지 말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는 "다행히 건강하고 의사소통에도 문제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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