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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들고 튀었다···무인점포, '잔고 0원' 체크카드에 뚫렸다
영일군
2019.11.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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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에 소재한 이마트24 김포DC점. 9월 30일 문을 연 국내 최초 무인자동결제 편의점이다. 

이 매장의 실질적인 ‘점주’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소비자가 고른 제품의 바코드를 인식하고 돈이나 신용카드를 받아 결제하는 창구·점원이 없다. 소비자는 물건을 고른 뒤 그냥 걸어서 나가면 된다. 결제 업무를 AI가 대신하기 때문이다. 

AI가 46㎡(14평) 매장 곳곳을 샅샅이 관리할 수 있는 건 카메라와 센서 덕분이다. 매장 상부에 설치한 31대 카메라는 AI의 눈이다. 최대 10명이 동시에 매장에 들어와도 이들의 동선을 일일이 추적한다. 

매대에 설치한 센서는 AI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제품의 무게·크기를 감지한다. 과자·음료수 같은 ‘진열형’ 제품은 매대 바닥에, 젤리처럼 걸어두는 ‘거치형’ 제품은 제품걸이에 센서가 숨어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집어 들어서 무게가 변하면 이를 구입의사가 있다고 인지하고 가상의 ‘장바구니’에 담는다. 집어든 물품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두면 이를 가상의 장바구니 목록에서 자동 삭제한다. 

13일 방문한 이 매장은 790여가지 제품을 판매 중이었다. 모든 제품은 AI의 검수를 거쳤다. 생수부터 껌 한 통까지 매장 입고 전에 AI는 딥러닝(deep learning·심층기계학습)을 통해 제품의 무게·외형을 학습했다. 덕분에 소비자가 아무리 작은 물건을 들고나가더라도 AI는 해당 제품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김경주 신세계I&C 담당은 “소비자가 볼 때 거의 비슷하게 생긴 빼빼로(37g)와 아몬드빼빼로(54g)도 무게가 다르고, 전면·측면·후면 인쇄가 다르다”며 “딥러닝을 거친 AI가 빼빼로를 아몬드빼빼로로 인식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에서 종종 진행하는 행사상품도 AI는 알고 있다. 예컨대 이날 농심의 컵라면 제품인 너구리 큰사발 제품의 ‘2+1’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개당 1600원에 판매하는데, 2개를 구입하면 1개를 덤으로 주는 행사다. 소비자가 제품 3개를 들고 나가면 AI는 알아서 3200원만 청구한다. 

중앙일보가 실제로 경험해본 무인자동결제 편의점은 미래 사회를 방문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매장 계산원(캐셔·cashier)가 없어도 원하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AI가 유통산업과 소비행태를 바꾸고 있지만, 아직 기술적으로 완벽한 건 아니었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신기술인 만큼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일단 이 매장에 입장하려면 미리 스마트폰으로 SSG페이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야 한다. 이 애플리케이션에서 SSG페이와 신용카드·체크카드를 연동하고 나서 생성되는 QR코드를 입구에서 인식해야 출입문이 열린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날 기자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아이폰)에선 QR코드가 생성되지 않았다. 20분 이상 시도하다 결국 QR코드 생성을 포기하고, 신세계I&C 담당자의 스마트폰에 깔린 QR코드로 매장에 입장했다. 

매장 입장 후 중앙일보는 8가지 비정상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AI의 정확성을 실험했다. 그런데 2가지 상황에서 AI는 제품 구매를 인지하지 못했다. 병음료(비타500)를 매장 안에서 한 모금 마시고 그냥 제품을 두고 나왔을 때, AI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또 이미 구입했던 제품(쥬시후레시)을 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동일한 제품과 바꿔치기했을 때도, AI는 감쪽같이 속았다. 제품의 무게·형태가 비슷한 걸 대신 두고 나오면, 해당 제품을 들고 나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일부 비정상적인 쇼핑행위는 즉시 결제가 되지 않고 약 5분가량이 지난 이후 뒤늦게 결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행사상품 인식도 완벽하진 않다. ‘2+1’ 행사를 진행하는 너구리 큰사발을 소비자가 2개만 들고 나가면 3200원을 청구하지만, 1개를 공짜로 더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알려주지는 않는다. 1개를 더 들고 나가지 않은 소비자만 손해다. 

가장 큰 허점은 소비자가 악의적으로 제품 대금을 치르지 않는 경우다. 예컨대 소비자가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에 체크카드를 등록해두고, 체크카드와 연동한 계좌에 잔고가 거의 없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다량의 물건을 들고 나가면 이를 방지할 수단이 없다. 

김경주 담당은 “무인자동결제 매장은 기본적으로 고객과 기업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며 “일단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걸어 다른 결제수단으로 재결제를 요청하긴 하지만, 소비자가 이를 거부하고 체크카드를 해지하면 결제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제품은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 예컨대 유통기한이 짧은 즉석식품은 매장 관리자 확인이 필요하다. 또 아이스크림처럼 일일이 세워서 진열해야 AI가 인식하는 상품도 사람 손이 많이 간다. 

또 국내법상 주류·담배 등 성인에게만 판매하는 제품은 자판기로 판매한다. 이 자판기를 이용하려면, 매장 직원이 성인을 확인한 뒤 직원카드를 접촉한 이후에만 살 수 있다. 

인식 오류가 발생해서 환불 처리를 진행하는 경우에도 사람 손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매장 직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소비자의 스마트폰 주문·결제내역을 일일이 확인한 뒤 한건씩 취소한다. 제품을 다량으로 샀을 경우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아직은 AI를 도입하는 기업 입장에서, 신기술 개발·관리비를 투입하면서 인건비도 그다지 절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날 약 2시간가량 이어진 취재 시간 동안 이 매장을 실제로 이용한 소비자는 오직 신세계I&C 직원뿐이었다. 일반 소비자 3명이 매장을 찾았지만,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자 모두 매장 이용을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분류하지만, 관련 제도의 미비와 규제, 인재 유입 지연으로 유통산업에서 AI 도입 속도는 경쟁국 대비 느린 편”이라며 “AI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보편화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의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소비자의 소비를 조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AI가 추천하지 않았다면 사지 않을 제품인데, 굳이 AI가 추천하면서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이커머스 쿠팡에서 특정 상품을 검색한 뒤 사지 않으면, 쿠팡은 하루에 1~2차례 매일 해당 제품을 사라고 추천한다. 

개인정보 문제도 AI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AI가 정확도를 높이려면 기본적으로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보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여행·항공권 예약 사이트가 소비자 취향에 적합한 여행지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이메일·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검색기록을 참조한다. 해당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해당 웹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비자는 원치 않더라도 특정 개인정보를 노출해야 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순간 개인의 공간은 수많은 빅브라더(big brother·정보를 독점하는 권력)의 보이지 않는 감시를 받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가 AI 핵심인력을 확보하기 불리하다는 점도 문제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하반기 공개채용에서 전체 모집인원의 70%를 디지털 관련 직종으로 채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AI 핵심인력이 부족하다. 

홍정우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 가상설계센터 선임연구원은 “AI 기술이 확산하고 적용영역이 확대하면서 고급 첨단 인력이 창출하는 역량에 따라 경쟁이 좌우된다”며 “구글·애플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삼성전자·현대자동차처럼 규모가 큰 기업에 비하면 유통기업은 상대적으로 핵심 AI 인력을 유치하기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AI가 일자리를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역시 논란거리다. 새로운 기술은 통상 상대적으로 비용 대비 높은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급부로 부가가치가 낮은 기존 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다. 대형마트의 계산원이나 백화점의 안내원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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